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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 좋은 시 모음

[시가 있는 아침] 은산철벽(銀山鐵壁)

by 맥가이버 Macgyver 2015. 1. 28.




 


 




 
          은산철벽 (銀山鐵壁)  
 
 
[시가 있는 아침] 은산철벽(銀山鐵壁)
 


은산철벽(銀山鐵壁) - 오세영(1942~ )



까치 한 마리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엿보고 있다.
은산철벽(銀山鐵壁),
어떻게 깨트리고 오를 것인가.
문 열어라, 하늘아.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 대궁을 밀어올린다.
문 열어라, 하늘아.



눈 내린 산은 은색으로 가득하고
꽁꽁 얼어붙은 하늘은 강철 같아서
칼날이라도 닿으면 쩡쩡 울 것 같은 혹한의 겨울.

미루나무 우듬지에 앉은 까치 한 마리
견고한 은산철벽의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어떻게 이 팽팽한 하늘을 깨트리고 오를 것인가.
단단한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혹독한 시련의 틈새를 뚫고
난초 꽃 대궁을 밀어올리는 법이니….



마침내 시인은 외친다.
“문 열어라, 하늘아”라고.
모두가 절벽이라고 말할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길은 열리고 시작된다.
한 해를 또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마음이 이러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초에 오세영 시인을 만났을 때,
하느님이 인간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지으셨는데
세상은 왜 말로 만드셨는지 아느냐고 하문한 적이 있다.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말로써 질서를, 존재를 부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란다.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언어, 세계를 창조하는 언어.
그렇다면 최초의 시인은 하느님이다.
시인은 그런 존재다.
은산철벽의 문을 열고 꽃 대궁을 밀어올리는 혹은 맨 처음의 질서와 존재를 부여하는.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