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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울릉도 특집 | ① 새 코스로 성인봉 등정] ‘진녹색 세상’에서 보낸 초대장

by 맥가이버 Macgyver 2013. 10. 23.
[가을 울릉도 특집 | ① 새 코스로 성인봉 등정] ‘진녹색 세상’에서 보낸 초대장

 

  • 글·사진 김민수 객원기자 
 
저동~줄맨등~말잔등~성인봉~바람등대~KBS 중계소 새 코스… 약 8km, 5시간

한반도 동단에서 배를 타고 세 시간여 가다 보면 망망대해 끝에 섬이 하나 둥실 떠오른다. 펄펄 끓는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는 우리 국토이자 민족의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 울릉도다. 아득한 옛날 해저분지에서의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섬이다. 3,000m가 넘는 심해에서 발원한 거대한 힘이 수면 위로 솟구쳐 지금의 울릉도를 만들어냈다.


이곳에 우리나라 섬 산 중에 한라산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성인봉(984m)이 있다. 해발 1,000m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해수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도인 걸 감안하면 육지의 1,400m대 산과 비교해도 무방하다.


 
▲ 빼어난 조망을 선사하는 성인봉 정상 전망대. 북면 일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성인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크게 네 갈래가 나 있다. 도동 인근에서 출발하는 대원사, 안평전, KBS 중계소 코스와 나리분지 쪽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골짜기들이 발달해 있는 데 반해 길은 비교적 단순하다.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산세가 사뭇 험준한 까닭이다.


싱그러운 숲 향기 가득한 등산로


울릉도 성인봉에 새 등산로가 생겼다. 약초 캐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오솔길을 정비한 것으로 기존과 다른 각도에서 산을 살필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길은 저동마을을 출발해 봉래폭포 방향으로 오르다 저동초등학교 못미처 우측 작은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른 발품을 판다면 드넓은 바다를 병풍삼아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등산로가 휘어 나간 자리에 자라고 있는 나무.
▲ 등산로가 휘어 나간 자리에 자라고 있는 나무.

새로 난 등산로에 토박이들은 ‘줄맨등’ 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길이 워낙 가팔라 울릉도 개척 당시 줄을 잡고 오르내렸다는 데서 유래한 것. 확인해 본 결과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잊을라치면 이어지는 오름길은 산행이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는 버거워 보였다.


무더운 8월 말 더위는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전날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한바탕 혼이 난 탓에 새벽같이 숙소를 나섰다. 여름철 산행은 아주 일찍 시작해 한낮의 해를 피해 내려오는 게 상책이다. 어중간한 시간 선택은 이후 즐거운 산행을 고역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른 발걸음을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독도를 제외하면 울릉도는 한반도에서 해돋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산행에는 울릉도 저동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산악인 조중호씨가 함께했다. 오전 일을 접어가며 안내를 자청한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손사래를 치며 걸음을 옮기는 그를 따라 네 사람이 된 취재팀은 가로등이 채 꺼지지 않은 저동 거리를 빠져나왔다.


등산로는 한동안 쉼 없는 오름길로 이어졌다. 해발 0m에서 출발하는 산행인 탓에 성인봉은 984m라는 높이보다 소요되는 체감시간이 훨씬 더 길다. 동해바다 심해에서 솟구친 성인봉의 높이는 사실 숫자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10분 남짓 오르자 저동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 포인트가 나왔다. 붉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 배경과 잠에서 깨고 있는 마을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제법 그림을 만들어냈다.



	울릉도는 일색고사리, 공작고사리 등 양치식물의 천국이다.
▲ 울릉도는 일색고사리, 공작고사리 등 양치식물의 천국이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일출 포인트가 있는데 오늘은 수평선에 구름이 껴서 별로일 것 같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해.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된 일출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하늘이 맑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뿐. 일기변화가 심한 울릉도는 연중 청명일수가 80일 정도에 불과해 짧은 일정 중에 제대로 된 일출이나 일몰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높이를 더하며 좁은 길가에는 다양한 초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싱그러운 숲 내음 가득한 길을 걷는 건 산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울릉도 성인봉을 얘기하며 식물 얘기는 빠뜨릴 수 없다. 숲의 모습과 구성이 육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탓이다. 그 이유는 오랜 기간 격리된 채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육지에서 멀게는 200km 이상 떨어져 있는 울릉도의 식생들은 이곳 지형과 기후조건에 맞춰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왔다. 그 영향으로 이곳에 자라는 식물들의 이름 앞에는 유독 ‘섬’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들이 많다. 섬잣나무, 섬노루귀, 섬말라리, 섬조릿대 등이 그 예로 육지의 그것과 닮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연이어 앞을 가로막고 선 섬조릿대와 관중 군락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울창한 수풀을 헤치며 취재팀은 진녹색 세상으로 한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1 말잔등을 향하다 만난 갈림길. 오른쪽 장재길을 따르면 나리분지로 갈 수 있지만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2 섬조릿대 군락을 헤치며 정상으로 향하는 취재팀.
 
▲ 1 말잔등을 향하다 만난 갈림길.
오른쪽 장재길을 따르면 나리분지로 갈 수 있지만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2 섬조릿대 군락을 헤치며 정상으로 향하는 취재팀.

호젓함 속에 만끽하는 숲길의 매력


산행 시작 후 두 시간 정도면 길게 이어지던 오름이 끝난다. 이내 올라서는 능선은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습이 말의 등을 닮았다 하여 명명된 ‘말잔등’이다. 말잔등은 성인봉에서 북동 방향으로 연결된 능선을 일컫는다. 정수리에는 간두산(967m)이 솟아 있고, 북으로는 나리등(691m)과 나리봉(813m)이 연이어 자리한다. 줄맨등 코스는 여기서 기존 등산로와 선을 같이 한다.


오른쪽은 나리등을 거쳐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능선에 올라서기까지 제법 다리품을 팔아야 하지만 장엄한 일출과 짙은 녹음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아직 찾는 이들이 적어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1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등성이’ 바람등대. 2 정상 직전에 마련된 쉼터.
 
▲ 1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등성이’ 바람등대. 2 정상 직전에 마련된 쉼터.

오르는 내내 바라보이는 사면은 간두산의 일부다. 성인봉은 여기서 남서쪽 한 시간 거리에 물러나 있다. 산행 도중 군사시설을 만나면 철책 왼쪽을 따라 지나야 한다. 항상 근무하는 초병이 있어 사진촬영은 금물이다. 잠시 뒤 헬기장에 들어서면 사방으로 트인 조망 속에 울릉도의 면면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힘차게 뻗어 내린 능선의 기운은 헌걸차기만 하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뜻 모를 감동이 전해 온다.


성인봉을 향해 뻗은 능선길은 아기자기한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은 흐른 땀을 식혀 주었다. 문득 일행들을 이끌던 조중호씨가 한 줄기 명이를 발견하곤 입을 열었다.


“요즘 울릉도에서는 명이가 문제야. 특산품으로 유명세를 타니 현지인이나 외지인 가릴 것 없이 남획하고 있어. 손쉽게 수확할 수 없으니 점점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런데 울릉도 산세란 게 만만하지가 않아. 곳곳에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있어서 매년 명이철이면 크고 작은 인사사고가 끊이질 않거든. 지난 봄에도 여러 차례 시신을 수습해야 했으니 문제야.”


조상들은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명을 이어준다 하여 명이라 이름 지었다. 최근에는 그 명이로 인해 사람이 상하고 있다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어찌 됐건 불필요한 인명사고는 막아야 한다. 자연이 허락하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는 건 금물이다.



	하산 도중 팔각정에서 마주한 동해바다와 저동항.
▲ 하산 도중 팔각정에서 마주한 동해바다와 저동항.

어른 가슴 높이까지 자라난 조릿대 숲을 한동안 헤치며 나가면 작은 쉼터에 들어선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지나는 이곳은 각 등산로들이 합류되는 곳이기도 하다. 짧은 오르막 끝에 정상에 들어서며 대한민국 국토로서의 독도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구름에 가린 동남쪽을 바라보며 뭉클함이 전해 오는 건 오랜 세월 모진 해풍을 견뎌온 독도가 가여워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핑계로 관심밖에 뒀던 세월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는지 모른다.


정상석 뒤 전망대로 내려서자 입을 다물 수 없는 그림이 펼쳐졌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푸른 하늘을 캔버스 삼은 북면 일대의 전경에 한동안 탄성만 내질러야 했다. 미륵산(900m)에서 송곳산(605m)으로 내달리는 능선은 용암이 끓어오르던 태곳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아래로는 지금의 울릉도를 빚어낸 자궁과 같은 나리분지와 알봉분지가 너르게 자리했다. 검푸른 바다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는 듯 보였다. 해변에 다가와 제 몸을 비벼대는 파도는 요란한 돌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을 터였다.


다시 정상에 올라서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 가져다 놓은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높은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1 말의 등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은 말잔등 능선. 성인봉은 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2 성인봉에서의 하산은 도동과 저동, 안평전, 나리분지 등으로 할 수 있다. 
 
▲ 1 말의 등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은 말잔등 능선. 성인봉은 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2 성인봉에서의 하산은 도동과 저동, 안평전, 나리분지 등으로 할 수 있다.

하산은 먼저 지났던 쉼터에서 시작된다. 내친김에 나리분지로 향하고 싶었지만 안내해 준 조중호씨가 홀로 내려갈 걸 생각하니 미안함이 앞섰다. 줄곧 아래로 곤두박질치다 바람등대에 이르러 다리쉼을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등성이’라는 뜻의 이곳에는 여러 개의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번에는 산중에 정자 하나가 서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보니 저동항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시끌시끌한 산 아래 소리가 들려오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집 지붕 위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머잖은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관광으로 입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버스타고 일주도로 한 번 돌고, 오징어회 한 접시 후딱 해치우고는 집에 돌아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보는 게 얼마나 되겠어? 이렇게 성인봉에도 올라보고, 섬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도 걸어봐야지. 그러고 나면 알게 될 거야. 아직 이곳에 볼 게 더 많이 남았다는 걸. 진짜 울릉도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야.”


산행길잡이


저동초등학교 부근
주택가 골목서 시작


줄맨등 코스의 산행 기점은 저동초등학교다. 마을버스를 이용해 학교 정류장에 내린 뒤 정문에서 주택가 골목을 따라 약간 내려서다 ‘말잔등’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을 만나면 왼쪽으로 접어든다. 저동에서 도보로 출발할 경우 울릉중학교에서 초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따르다 보면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내 시작되는 산길은 코스 이름답게 가파른 오름의 연속이다. 산행에 나서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스틱을 휴대하면 도움이 된다. 초입부터 말잔등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이후 성인봉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므로 KBS 중계소로 하산하기까지 다섯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정상에서 반대방향인 북면 나리분지로 내려갈 수도 있으나 이후 40분에 한 대꼴로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하산은 도동과 저동, 안평전, 나리분지 등으로 할 수 있다. 앞선 세 길은 동일한 산길을 따르다 바람등대에 이르러 갈라지고, 나리분지로 가는 길은 서북쪽으로 난 능선을 따르다 급경사 나무계단을 이용한다.


아직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산길은 겨울을 제외하곤 수풀로 우거져 있다. 풀숲을 헤치고 진행해야 하는 구간이 여럿 있으므로 가급적 긴 팔 옷을 착용하는 게 좋다. 경사가 급한 길인 만큼 겨울철에는 낙상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방향 표시가 잘 되어 있긴 하나 가급적 유경험자와 동행하고, 겨울철에는 아이젠을 준비해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이른 아침 출발한다면 저동 시내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가겟집을 만날 수 없다. 산행식이나 마실 거리는 미리 준비하도록 한다.



	울릉도 개념도
▲ 울릉도 개념도

교통 현재 포항과 후포, 묵호항에서 울릉도행 여객선이 출발한다. 포항에서 떠나는 배는 오전 9시 50분에 출발해 12시 50분 도착한다. 요금은 일반석 대인 기준 6만4,500원. 묵호에서 나가는 배편은 오전 8시 20분에 출항하고 2시간 30분 걸려 울릉도에 닿는다. 5만5,500원. 후포에서는 매주 한 차례 배가 떠난다.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출발, 요금은 5만4,000원이며 3시간 30분 걸린다. 동절기인 11월 말부터 2월 말까지는 강릉항에서만 여객선이 출발한다. 자세한 운항정보 및 예약은 대아고속해운 홈페이지 www.daea.com 참조.


울릉도 대중교통은 크게 버스와 택시로 나뉜다. 버스는 40분에 한 대꼴로 운행하며 도동항 기준 오후 7시 전후가 막차다. 택시는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항구에 대기한다. 미터기 요금을 적용하지만 관광지인 만큼 목적지에 따른 사전 책정 금액을 부과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