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2일(토)
한강다리 23개 모두 건너기 - 2일차(양화대교ㆍ서강대교ㆍ마포대교ㆍ원효대교ㆍ한강대교ㆍ동작대교ㆍ잠수교ㆍ반포대교ㆍ한남대교ㆍ동호대교ㆍ성수대교ㆍ영동대교)
'한강다리 23개 모두 건너기 - 2일차(양화대교ㆍ서강대교ㆍ마포대교ㆍ원효대교ㆍ한강대교ㆍ동작대교ㆍ잠수교ㆍ반포대교ㆍ한남대교ㆍ동호대교ㆍ성수대교ㆍ영동대교)' 코스
당산역→양화대교 남단에서 도강→당산철교→절두산(잠두봉) 순교성지→서강나루터/상수나들목→서강대교 북단에서 도강→여의도 물빛무대→여의도 물빛광장→마포대교 바람의 길→마포대교 남단에서 도강→한번만 더 동상→마포종점나들목→청암보도육교→舊용산수위관측소→원효대교 북단에서 도강→63빌딩→샛강→한강철교→한강대교 남단에서 도강→노들섬→한강거북선나루터→동작대교 북단에서 도강→더 리버→서래섬→세빛섬→잠수교 남단에서 도강→반포대교 북단에서 도강→달빛무지개분수쇼 관람대→자연학습장→한남대교 남단에서 도강→천일정 터→한남동 주민쉼터/큰한강 부군당한남오거리→한남역→한남나들목→옥수나들목→옥수역→동호대교 북단에서 도강→의인 최원욱 추모비→성수대교 남단에서 도강→한강전망대→성덕정나들목→수레나루나들목→한신아파트나들목→능소화군락지→청구아파트나들목/강변데크→영동대교→벽천쉼터→벽천분수→인공암벽→벽천나들목→신양중학교→신성기업→영동대교 북단에서 도강→영동대로→학동역→삼성해맞이공원(장미원)→청담나들목→청담대교→탄천합수부다리→잠실종합경기장나들목→잠실새내나들목→잠실물놀이장→잠실대교 남단→잠실역
한강다리 이름은 (하류에서 상류방향으로 / 현재 걸어서 도강이 가능한 다리는 파란색으로 표기)
일산대교→김포대교→행주대교→방화대교→마곡철교→가양대교→월드컵대교→성산대교(성능개선공사로 25년 말까지 도보 통행불가)→양화대교→당산철교→서강대교→마포대교→원효대교→한강철교→한강대교→동작대교→반포대교→잠수교→한남대교→동호대교→성수대교→영동대교→청담대교→잠실대교→잠실철교→올림픽대교→천호대교→광진교→구리암사대교→강동대교→고덕대교/구리대교 (2025년 완공예정)→미사대교→팔당대교→신팔당대교(2028년 완공예정)
삼일절 연휴에
한강다리 中 보행가능교 24개 모두 건너기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성산대교 도강이 불가하다는 정보가 있어서...
2월 28일(수)에 답사를 나섰더니...
성산대교 성능개선공사로
2025년 말까지 성산대교 보도부를 전면폐쇄하여
걸어서는 도강할 수 없다네...
해서
'한강다리 中 보행가능교 23개 모두 건너기'로 수정함.
오늘은
삼일절 연휴도보로
한강다리 23개 모두 건너기 - 2일차(양화대교ㆍ서강ㆍ마포ㆍ원효ㆍ한강ㆍ동작ㆍ잠수교ㆍ반포ㆍ한남ㆍ동호ㆍ성수ㆍ영동대교) 걷기를 나선다.
▼ 당산역에서...
당산철교 堂山鐵橋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당산동을 연결하는 한강에 있는 다리이다. 철교로 가설되어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있다. 다리 이름은 당산동의 동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마을 산에 당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폭 10m, 길이 1,360m로 1980년 2월 26일 착공하여 1983년 12월 31일 남부토건에 의해 준공되었다. 다리 상부는 鋼材로 되어 있고 하부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다. 한강의 다리 중 최초로 트러스(truss) 형식으로 가설되어 조형미가 뛰어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고로 인해 교량 안전 점검을 시행하여 1996년 12월부터 재시공에 착수하여 1999년 11월 준공되었다. [출처] 서울지명사전 |
양화대교 楊花大橋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하는 다리. 개설 양화대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구교인 제2한강교는 한강 위에 가설된 세 번째 교량이다. 이후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확장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서울의 서부지방과 인천·김포공항·인천공항 등을 연결하는 관문교량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965년 1월 25일에 건설된 구교는 길이 1,108m, 너비 18m로 건설되어 서울 서부와 수도권 서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서울에서 서부전선의 문산으로 물자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더 컸다. 이후 급격한 교통량 증가와 대형교통의 빈번한 통과로 말미암아 교량의 노후문제가 발생하여,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1982년 2월에 왕복 8차로의 신교를 준공하였다. 기존의 다리를 확장하고 입체시설도 개선하여 현재의 교량으로 개축되었다. 구교의 상부구조는 폭 18m, 길이 1,053m인 강판형교(steel plate girder) 및 콘크리트 박스거더(concrete box girder)로 구성되어 있고, 신교는 폭 16.2m, 길이 1,053m인 강판형교로 구성되었다. 하부기초는 우물통 파일기초 또는 직접기초방법을 적용하였다. 교통량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교량 양측에 접속 입체교차로를 가설하였는 바, 복합클로버형을 채택하여 좁은 면적으로도 완전입체교차시설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산업 발달과 물동량 증가로 교통이 대형화하여 2등교인 구교는 이용에 불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시설물의 노후화에 따른 안전이용이 우려되어 1996년 6월부터 구교의 성능 개선과 신교의 보수를 위한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8월 14일에 교량의 성능개선을 완료하였다. 이와 함께 일산·마포대교·여의도·인천국제공항 쪽에서 양화대교 방향, 양화대교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진출입하는 램프도 함께 개통되었다. 현황 2002년의 성능개선 공사가 완료됨과 동시에 양화대교의 차량통행량은 급증하였다. 2001년까지는 일일 평균 8만여 대의 차량이 통과하였지만 2002년부터 차량통행량은 증가하여 2009년에는 일일 평균 13만 4,710대가 양화대교를 통행하였다. 한편 교량 밑으로 대형 선박이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교량 중앙의 112m 구간과 이를 지지하던 교각 2개를 해체한 후 로제아치교를 대신 설치하는 구조개선공사가 2010년부터 2011년 말까지 진행된다. 이는 경인 아라뱃길을 통한 서해로의 뱃길회복에 발맞추어 대형선박의 한강 내 운항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강대교 西江大橋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신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개설 서울특별시 중서부 지역 중심부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신정동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다리이다. 교량 북단은 창전로와 직결되어 신촌 및 서울 도심 방향으로 손쉽게 진출입 할 수 있으며, 교량 남단은 여의도 일주도로 및 국회의사당 정문 등과 연결된다. 개통 이후 여의도 서부지역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음은 물론, 기존 마포대교 및 원효대교의 상습적인 교통정체 또한 크게 해소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80년 6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몇 차례 중단된 뒤 재개되었고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되다가 1999년 최종 완공되었다. 1996년 양화대교 구교 1차 철거에 따라 최초 개통될 당시 서강대교 북단은 강변북로를 통해서만 진출입이 가능했으며, 1997년양화대교 구교 완전 철거에 따라 2차 개통되면서 서강대교 북단과 신촌로터리를 연결하는 가교가 설치되었다. 1999년에 서강대교 북단 램프가 완공되면서 지금의 서강대교가 완성되었다. 현황 총 연장 1,320m, 너비 29m, 유효 너비 25m, 높이 21m이다. 경간 수는 23개이고 경간 사이 최대 거리는 150m에 이른다. 한강 수질 및 밤섬 철새도래지 보호를 위해 콘크리트 상판(960m)을 연속압출공법(I.L.M.)으로 가설하였으며, 밤섬 북측에는 곡선미와 조형미가 뛰어나며 구조적 안정성이 우수한 닐센아치(Nielsen Arch) 강상판 교량이 설치되었다 서강대교 북단 램프 개통으로 강변북로(자유로)에서 진입이 수월해짐에 따라 고양시 및 서울 서부지역에서 여의도에 진입하는 차량들이 많이 이용한다. 교량 남단 인근에 한강시민공원이 위치해 행락객의 이용도 빈번하나,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한강 밤섬을 가로지르는 노선으로 인해 환경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도 지적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마포대교 麻浦大橋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연결하는 다리. 내용 1970년에 준공되었다. 처음에는 서울대교라 부르다가 마포대교로 이름을 고쳤다. 마포쪽으로는 6차선 폭으로 연결되고 용산·서교동 방면으로는 2차선으로 접속되었으며, 3층 구조의 클로버 잎사귀형 입체교차로가 설치되었다. 하부공은 우물통 또는 철근콘크리트 파일기초로 연암층에 정착되었고 철근콘크리트구주식 교각으로 되었다. 상부공은 고장력강재를 사용하였으며, 마포쪽 유심부 위는 장경간 연속 강박스거더(steel box girder), 고수터 등 나머지 구간은 3경간 연속 강판형교(steel plate girder) 및 PSC 거더 등에 철근콘크리트 슬래브를 합성하였고, 교면은 아스팔트로 포장하였다. 최대경간장은 52.5m, 폭 25m, 연장 1,389m, 내하능력 DB-18의 6차선 다리이다. 다리의 건설은, 대량수송시설 및 시내버스 그리고 자가용 승용차의 증가추세에 따른 교통체증을 해소할 뿐 아니라, 소요거리 및 소요시간 등을 단축시켜줌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다리 및 접속도로에 부하되는 교통량을 적절히 분배할 수 있도록 고안하여 입체교차로를 설치함으로써 그 기능이 더욱 원활하게 되었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올림픽대로가 개통되면서, 여의도와 영등포를 연결하는 접속교량 부근에서 심한 교통체증을 일으켰으며, 물동량의 증가에 따른 교통량의 증가 및 대형화로 기존 다리의 노후화가 심하여 1996년 11월에서 1997년 8월까지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여 진단결과에 따라 보수보강을 시행해 구조물 안전에는 일단 이상이 없게 되었다. 새로운 마포대교는 1996년 착공하여 2000년 6월 완공되었으며, 기존 마포대교는 2000년 7월부터 재가설 공사를 시작해 2005년 10월에 완료하였다. 기존다리 보수보강 후 왕복 10차선 마포대교가 완공되어 마포로와 여의도의 교통소통이 원활해졌다. 여의도지구의 도시 건설, 서울∼인천간 및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 서울∼수원간 국도확장, 한강연안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신설 등에 의해 여의도 중심의 한강연안 일대에 교통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마포대교의 건설은 교통배분의 합리화를 기하게 해주었고 대량교통을 적절히 수용하도록 해주었다. 다리의 가설 지점은 영등포·김포·인천·수원 방면의 교통을 담당하여 수도권의 중요간선도로망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원효대교 元曉大橋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와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연결하는 다리. 내용 길이 1,470m, 너비 20m의 교량이다. 민자(民資)에 의해 1981년 준공된 국내 최초로 디비닥공법(Dywidag工法)을 도입한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장대교량이다. 이 교량의 형식은 미관과 경제성을 고려한 디비닥공법을 응용, 100m 경간의 콘크리트 변단면 박스거더 교량이다. 이 교량은 외관이 미려한 장대구조로서 외팔보법(free cantilever method)을 응용하여 지보공 없이 가설되게 하였으며, 상부구조의 콘크리트 단면은 콘크리트 아치형의 변단면으로서 자중이 감소되는 2연중공(中空) 박스거더로 이루어졌고, 박스거더의 하단이 종방향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어 외관이 매우 아름답고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이 있다. 하부구조에 있어서 교량의 기초는 우물통기초를 사용하였고, 교각은 시각적으로 우아하고 상부구조와 잘 조화되는 V형으로 하였다. 서울시의 영등포 및 흑석동 방면에서 한강 이북으로의 교통량이 점증하는 추세에서, 이 방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교·한강대교·반포대교의 단측 7차선으로는 무리가 따르게 되고, 또한 앞으로 교통량의 급속적인 증가를 예상할 때 원효대교의 건설은 과중한 교통량을 흡수하고 분산처리해 주는 기능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것이다. 처음에는 민간회사에서 건설하여 유료도로로 하였으나, 1984년에 서울시에 기증하여 현재는 무료로 통행하고 있다. 1993년 12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5차에 걸친 PSC 강봉설치 및 인장등 성능개선공사를 하여 지점부 처짐을 방지하였으며, 성수대교 사고 이후 1997년 9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교좌장치를 교체하는 등의 보수작업을 실시하였다. 이 교량은 의의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구조물의 기능에만 치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미관을 고려한 디비닥교가 국내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것은 기술에 있어서의 의미 있는 쾌거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강철교 漢江鐵橋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연결하는 철도교. 내용 A · B · C의 3개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A선은 총 31경간에 길이 1,110.25m, B선도 A선과 마찬가지로 총 31경간에 길이 1,110.25m이며, C선은 총 31경간에 길이 1,112.8m이다. 한강철교는 한강상의 최초의 다리이며,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기술을 도입한 교량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옛날 국왕은 선왕의 능에도 참배하고 온천에 가거나 나들이를 하기 위하여 1년에 몇 번씩은 한강을 건너야만 하였다. 이와 같이, 국왕행렬이 도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큰 배 70여 척을 가로로 이어 서로 묶은 뒤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그 위를 5, 6필의 기마가 가로로 서서 자유로이 건널 수 있도록, 오늘날의 부잔교(浮棧橋)와 같은 교량을 세우곤 하였다. 그 뒤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의 확장과 더불어 교통량이 증가하고, 한강을 도강하는 물동량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교량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교량건설기술을 도입하여 한강에 최초로 건설한 이 교량은 경인철도 부설공사와 병행하여 용산과 노량진 간을 연결하는 한강철도교로 건설되어 1900년 이후 우리 나라의 애환을 함께 겪어온 역사적인 교량으로서, 현재는 3개의 철교로 되어 있다. 1896년 3월 29일 경인철도 부설권이 미국인 모스(Morse,J.R.)에 의하여 취득된 뒤, 1897년 착공하여 1900년 7월 5일 준공되기까지 총 4년여에 걸쳐 진행된 대공사였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토목공사로 수많은 인부를 한강 모래벌에 모이게 함으로써 용산과 노량진 일대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나라 신기술과 신토목공사의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경인철도합자회사에서는 “노량철교는 미국이 제작한 최신공법이요, 천하에 드문 것이고, 마치 길이 3,000척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 같다.”라고 선전한 바 있다. 이어서 1905년 경부선이 부설되자 수송량이 증가하게 되어 기존설비의 개량이 요구되면서 한강철교는 복선화가 필요하게 되어 이 교량 상류 쪽에 한강 제2철교를 가설하게 되었다. 이 제2철교는 1911년 7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준공되었다. 1913년 강재(鋼材) 거더(girder)를 새로 교체하고 교각은 일부를 개축하여 부재의 강도를 보강하였고, 1925년 7월에는 을축년 대홍수(국내기록상 최대홍수)로 인하여 축제가 일부 유실되자, 종래의 축제를 개축하여 교량구조물을 1m 높이기도 하였다. 처음 가설할 당시의 한강철교는 노량진 쪽에서부터 10경간까지만을 강교로 가설하고 나머지 용산 쪽은 축제였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이 제방이 유실되자 새로이 교각을 세워 가설한 것이다. 현재의 한강철교는 셋으로 되어 있다. 1944년 6월에 개통하여 사용하던 것을 1950년의 6 · 25전쟁으로 말미암아, 그 해 6월 28일 아군작전상의 폭파로 3선이 완전히 폐선되었다. 그 뒤 1951년 수도 서울을 수복한 뒤 A선(중간에 위치한 교량)을 우선 1951년 4∼6월 사이에 복구하였고, B선(상류 한강대교 쪽)은 1952년 2∼6월 사이에 가복구하여 임시로 사용하였다. 이어서 C선(하류의 여의도 쪽)은 1952년 10월에 착공하여 1957년 7월에 완전복구한 뒤, 가복구하여 임시로 사용하던 A · B선은 사용을 중지하고 C선만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966년 2월에 한강복구사업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대일청구권자금 제1차 재정차관사업의 일환으로 한강철교 A · B선 복구와 경인선복선화건설공사를 1967년 8월 28일에 착공하여 폭파된 지 19년 만인 1969년 6월 28일에 완전복구하여 현재의 한강철교로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는 전철의 수요증대로 A선과 C선 사이에 한 선을 더 추가하였다. 한강철교의 상부구조는 모두 트러스형식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된 A선은 노량진 쪽 10경간은 단순 와렌(Warren)트러스(7 panels), 용산 쪽 잔여구간은 강판형교로 구성되었고, 두 번째로 건설된 상류의 B선은 A선과 마찬가지로 노량진 쪽 10경간은 단순 와렌 트러스, 나머지는 판형교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늦게 건설된 C선은 3경간 연속 더블 와렌 트러스 3틀과 단순 트러스 1경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한강철도교 하부구조의 형식은 모두 중력식 교각과 교대이고, 기초공법은 지층의 심도에 따른 토질조건과 한강의 수심에 따라 잠함공법 · 우물통공법 · 강시판공법 등을 채택하여 하부구조가 만들어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강대교 漢江大橋 제1한강교 한강인도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연결하는 다리. 개설 1917년에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도록 인도교로 건설된 교량이다. 현재는 차량과 사람이 모두 통행할 수 있으며, 서울 도심과 여의도 동부의 노량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한강대교는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리었다. 1912년에 교량가설계획을 수립한 후 1917년 10월에 준공되었다. 1925년 7월의 을축년 대홍수로 중지도에서 용산쪽으로 건설되었던 소교가 유실되었다. 1929년 9월에 소교를 재개통하였고 폭은 18m로 확장되었다. 너비 36.6m, 길이 841.5m이고 교량 중간에 중지도가 있는 한강상 최초의 도로교이다. 한강대교는 서울에서 남쪽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위치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관문인 한강대교 건설에는 당시 총공사비 84만 3,000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노량진 쪽에는 경간 60m인 3운(運) 한강소교를 설치하고 양쪽 다리 중간은 401m의 둑을 쌓아 연결하였다. 1900년 한강철교가 가설되고 17년 동안 인도교가 가설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도시내 교통수단이 보행위주였으며 화물은 철도와 지게로서 운송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에 민간인의 영업차가 들어온 것이 1912년이었고 이때부터 다리가설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철교의 낡은 자재를 이용하여 가설하였으므로 폭이 좁고 중앙차도 4m, 좌우측보도는 각 1m에 불과하였다. 그 후 1925년에 있었던 을축년 대홍수 때 중간둑이 유실되어 용산측 한강소교가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제1차로 한강소교를 철폐하고 종래의 둑을 쌓았던 곳까지 연장하여 459m의 대다리 가설공사를 1927년 5월에 착수하여 1929년 9월에 준공하고 9월 18일에 파교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120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한편, 노량진의 본동쪽 한강교는 종전대로 사용하다가 1934년 3개년 계획으로 공사비 251만 8,000원을 들여서 현재의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의 다리로 다시 1937년에 준공하였는데, 이 때 한 한국 다리 기술자가 감독으로 참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1950년 6·25동란으로 타이드아치 3경간이 파괴되었던 것이 1957년 1월에 복구공사를 착수하여 1958년 5월 15일에 준공되어 서울의 명물이었던 한강대교가 새로운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다. 1981년 원래의 한강인도교 하류 쪽에 전과 동일한 6경간 타이드아치를, 그리고 거더교 구간에서 상류측에 19경간의 판형교를 가설하여 교량을 완전히 2배로 확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이름이 한강대교로 바뀌었다. 한강인도교가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부터 S자형의 평면노선이었던 것을 대칭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동안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기존의 구교량만으로는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신설된 제1한강교∼관악구청간 도로에 의하여 부가되는 도로교통량의 처리도 문제가 되어 불가피하게 확장공사를 하였다. 1차 다리건설은 상부가 핀 프랫 트러스(pin pratt truss) 강구조로 최대경간 60.6m이고 교각의 기초공법은 우물통공법을 채용했었다. 2차 다리 건설시에는 리벳팅 타이드아치 강구조로 최대 경간이 63.55m인 다리, 최대경간 28.787m인 강판형교(steel plate girder) 게르버교 이고, 하부 기초공법은 아치교에는 잠함공법, 판형교에는 우물통공법을 적용하였다. 3차 다리건설에서는 상부구조를 2차와는 달리 용접연결 구조를 도입하였을 뿐 모양과 형태가 동일한 강구조이고 하부기초는 모두 우물통공법을 채택 시공하였다. 이 교량은 건설부국도 1호선의 한강횡단 교량으로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규정에 따라 구교는 1995년 12월에서 1996년 11월, 신교는 1997년 6월에서 1997년 12월에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설계하중(DB ·24) 확보에는 지장이 없으나 다리 수명 연장이나 기능 원활을 위해 1998년 1월부터 2000년까지 구교를 보수하였고, 신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노면 포장 · 도장 공사 · 점검통로설치 등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현황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실시한 안전점검 및 정기진단 결과 교량안전에 저해할 만한 결함은 없다는 결론과 함께 도장 · 볼트체결 · 단면보수 등 일부 손상부위에 대한 보수보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2008년에 모든 보수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한강대교를 이용하는 자동차의 평균 통행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00년에는 13만 8천여대가 일일 평균통행량이었지만, 2009년에는 일일 평균 10만 8,262대가 통행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여기서 '한강다리 23개 모두 건너기 - 2일차(양화대교ㆍ서강ㆍ마포ㆍ원효ㆍ한강ㆍ동작ㆍ잠수교ㆍ반포ㆍ한남ㆍ동호ㆍ성수ㆍ영동대교) - 1부'를 마치고...
'한강다리 23개 모두 건너기 - 2일차(양화대교ㆍ서강ㆍ마포ㆍ원효ㆍ한강ㆍ동작ㆍ잠수교ㆍ반포ㆍ한남ㆍ동호ㆍ성수ㆍ영동대교)'
▣ 1부[당산역→양화대교→당산철교→서강대교→마포대교→원효대교→한강철교→한강대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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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한강대교→노들섬→동작대교→서래섬→세빛섬→잠수교→반포대교→한남대교→한남역]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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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한남역→옥수역→동호대교→성수대교→한강전망대→능소화군락지→청구아파트나들목]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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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청구아파트나들목→영동대교→청담대교→탄천합수부다리→잠실대교 남단→잠실역]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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